• 1) 귀츨라프가 본 한국인의 종교성

      귀츨라프는 한국인의 종교성(宗敎性)에 대하여 예리한 관찰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같은 그의 관찰과 평가는 그가 한국에 도착한지 불과 10여일이라는 짧은 기간과, 서해안의 몇 개 도서(島嶼)를 지나면서 살펴본 결과를 가지고 개념을 정립하였다고 볼 때 예리한 통찰역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가 한국 선교를 위하여 미리부터 치밀하게 준비하고 연구해 오면서 한국의 선교 정책을 한국인의 종교 성향(性向)에 맞도록 기본적인 부분부터 체계적으로 입안(立案)하여 복음 전도를 성공적으로 이룩하려는 의도로 풀이 할 수 있다.

      귀츨라프의 1832년 7월 27일 한국인의 종교 성향에 관한 부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한국인들은 공자(孔子, Confucius)의 가르침을 신봉하고 있으며, 우상을 숭배하지만 불교는 싫어하고, 도교(Taouism)는 잘 모르고 있다. 영혼은 불멸한다고 믿고 있지만 어떻게 불멸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대목은 설명하지 못하였다. 우리는 한국인 가정집에서 우상의 흔적은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을 뿐더러 어떤 종교적 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모든 것으로 보아 한국인은 비종교적(irreligious) 민족으로 보여 진다. 생(生)과 사(死)에 대한 위로가 될 수 있는 어떠한 교리도 알고자 하지 않는다.”*1)

      - From their statement, it appeared, that the tenets of Confucius were the popular belief. They have temples erected in honour of the founder; believe his doctrines infallible; and though they worship idols, they detest Budhism, and are unacquainted with Taouism. In avowing their belief of the immortality of the soul, they did not explain themselves upon this important point, but grew angry when we expressed out doubts of their entertaining any serious thoughts upon so consolatory a doctrine. We never discovered in their houses any traces of idolatry, nor did we ever witness them performing any religious rites. From all it appears that they are a very irreligious nation, and by no means anxious to become acquainted with the salutary doctrines which may afford consolations in life and death.

      귀츨라프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자임을 거듭 설명하였으나 한국인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성서 책을 받은 사람들은 정성 드려 읽고 간직 하겠다고 약속하였다고 하였다. 즉,

      “우리는 한국인들에게 인류의 구세주(Redeemer)에 관하여 기회 있을 때 마다 자주 이야기하고, 기독교가 시작되었던 시대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임을 거듭 읽고, 들려주고 하였지만 그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같은 무관심은 한국인의 두드러진 특징처럼 보였다. 그러나 원하는 사람들에게 성서를 포함한 책과 전도지를 준비하여 나누어 주었는데 이 책을 받는 사람들은 정성 드려 읽겠으며 소중하게 간직 하겠다고 약속했다.”*2)

      - We had frequently opportunity of speaking to them of the Saviour of mankind, whilst we explained to them the time of the commencement of our Christian era. They heard and read repeatedly, that Jesus Christ, God over all, was also their Redeemer; but their affections were never roused. Such callousness of heart bespeaks great degree of mental apathy which seems to be very characteristic of the Coreans. yet I provided those who were willing to receive the gospel, with books, and they promised to bestow some attention to the subject, and took great care to keep possession of their books.

      이때 귀츨라프가 나누어 준 책들은 기독교 서적들이었고, “한문 신약성경의 견본”이 포함되었다고 한다.*3)

  • 2) 이방인 접촉 금지 명령

      귀츨라프는 서해안에 도착하여 성서를 나누어 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런데 7월 27일 고관들에 의하여 어떤 책이나 물건도 주고받아서는 안 된다는 접촉 금지령이 내려져 유감스럽게 되었다고 하였다. 귀츨라프는 이때 관리들의 움직임에 대하여

       “우리가 상륙 허가를 받으려 하였을 때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음을 감지하였다. 우리가 상륙하자 군졸을 만났는데 그는 우리를 제지(制止)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무릅쓰고 전진을 계속하자 당황한 군졸은 목 베는 시늉과 배를 째는 시늉을 하며 상륙을 허락하면 자신이 형벌을 면치 못한다고 호소하였다. 우리를 안내한 조정관(Teng-no)이 그 군졸에게 무어라고 나무라자 억지웃음을 띠었다.”*4)

      -We found some difficulties in procuring their permission to go on shore. As soon as we stepped ashore we were met by a soldier, who intended to stop us; but when he saw that we hurried on, the made the sign of beheading, and ripping open the belly, as the unavoidable punishment awaiting him if he suffered us to proceed. However, our guide Tengno upbraided him, and his sour face forced itself into a smile.

      한편 린제이는 한국인과 이방인(外國人)의 접촉 금지령과 관련하여 그 이유를 설명 들어 보려고 여러 차례 노력하였으나 헛수고였다고 그의 보고서에 기록하였다. 즉,

      “나는 고관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다. 「당신들은 외국인들이 이 마을(管內)에 들어오는 것을 왜 그렇게 두려워합니까?」 이 질문은 그들을 당황하게 만든 것 같았다. 그들은 여러 번 서로 협의하면서 서기관(Yang-yih)은 붓을 잡고 몇 자 쓰다가 또 지우곤 하였다. 마침내 짤막하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Formerly it was not so)」."라고 대답하였다. 그들이 밝힌 제지 이유에 대하여 어떤 설명을 들어보려고 여러 차례 노력하였지만 헛수고였다. 무거운 형벌이 따르는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외국인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이 그렇게 강력하고 보편화 된 것이 틀림없었다. 가장 인적이 드문 섬을 비롯하여 어느 곳을 가든지 손으로 목을 자르는 똑같은 몸짓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자신들이 사는 곳에 이방인의 출입을 허용하였을 경우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가리킨다.”*5)

      -We were again particularly questioned as to the contents for the letter, but to this I declined giving any reply, saying that it would explain itself. In return we addressed several questions to the chiefs, among others, "Why are you so fearful of foreigners entering your villages?" This appeared to embarrass them much. They consulted some time; Yang-yih several times took up his pencil, wrote a few words and obliterated them, and at last merely answered, "Formerly it was not so." Although on various occasions we repeatedly endeavoured to obtain some explanation of the singular apprehensions manifested by them, it was always in vain; yet some very strong cause, and enforced by dreadful penalties, must exist to render this feeling so powerful and universal. Land where you will, in the most unfrequented islands, the same sign of passing the hand across the throat, indicates the penalty to which a Corean exposes himself by admitting foreigners to his dwelling.

  • 3) 복음의 씨앗과 전도의 열매

      귀츨라프는 이와 같은 금지령에 대하여 오히려 금지령으로 인하여 이 전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말씀, the word of life」을 받았음으로 성서의 가치가 더 높아졌고, 읽고자 하는 열성도 더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한국 땅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이 뿌리 내릴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즉,

      “나를 슬프게 한 것은 고관들이 더 이상 어떤 책들이나 물건이라도 받으면 안 된다고 금지시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단추 하나라도 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명령이 내리기 전에 이미 여러 군관과 서기들은 「생명의 말씀」을 받았다. 성서를 줄때에 역사와 지리책도 함께 나누어 주었다. 나는 이 금지령으로 책의 가치가 높아 졌으며 읽고자 하는 열성이 더 많아 졌다고 확신한다. 이 모든 일들은 내가 늘 기도로서 간구한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로 이루어 주신 하나님의 역사(役事)이다. 한국 땅에 씨 뿌려진 하나님의 진리는 완전히 소멸될 건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6)

      -To my great sorrow, our visiter were afterwards prohibited by the mandarins from receiving any more books, or any thing whatever; so that they did not dare take even a button. Previous to the issuing of this order, however, all the officers and clerks had received the word of life. At the same time, I had given them small treatises on geography and history, and I feel confident that the prohibition will enhance the value and increase the eagerness to read the books. At all events, it is the work of God, which I frequently commended in my prayers to his gracious care, Can the divine truth, disseminated in Corea, be wholly lost? This I believe not:

      그리고 귀츨라프는 가는 곳마다 복음을 열정적으로 전하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때에 열매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 나라의 쇄국정책이 거두어 저서 우리가 이 「약속의 땅(promising field)」에 들어갈 수 있다고 기대하며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즉,

       “한국 땅에 씨 뿌려진 하나님의 진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때(time appointed Lord)」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이 나라는 신분이 가장 낮은 서민들까지 글을 읽을 줄 알고, 또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나를 흥미롭게 하였다. 한국인 들은 다른 종교가 들어오는 것을 질투할 만큼 편협한 것 같지도 아니하였다. 그들은 상급자들이 우리가 준책들을 받는 것을 보고 하급자들도 그 책을 받으려고 밀려왔다. 이는 거의 어떤 종교도 피하려는 이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보정(補正)해야 한다는 교훈이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정치적 장애물(鎖國政策)을 제거하여 우리가 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허락하실 것이다.”*7)

      -there will be some fruits is the time appointed of the Lord. It is highly interesting to know, that the people even of the lowest classes can read, and delight in reading. They seem by no means so bigoted to their own, as to be jealous of the introduction of another creed. When the people saw that their chiefs received the books, they pressed forward to obtain the same gifts. This encourages us to try again to devise ways to introduce the gospel amongst a nation apparently almost devoid of any religion. Our Almighty God will remove those political barriers, and permit us to enter this promising field.

  • 4) 주기도문의 한글 번역

      「귀츨라프와 고대도」의 저자 리진호는 그의 책 머리말에서 귀츨라프가 한국 서해안에 와서 성서를 나누어 주고 주기도문을 번역하였다는 사실은 한국에서 발행된 기독교회사 첫 부분에 실려 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하였다.*8).

      그리고 김인수는 「한국기독교회사」에서 귀츨라프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한국교회사와 한국역사에 뜻 깊은 일 두 가지를 하였다. 하나는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한 일이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나마 한글로 성경을 번역한 첫 번째 일이었다. 또 하나는 섬사람들에게 감자 씨를 주면서 그 심는 법과 재배방법을 가르쳐 준 일이었다.”고 하였다. *9)

      린제이 보고서에 의하면 귀츨라프는 1832년 7월 27일 저녁 주기도문(Lord's Prayer)을 한문으로 써주고 서기관은 그것을 읽으면서 한글로 번역 하였다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즉,

      " 27일, 우리들은 오랜 설득 끝에 우리는 서기관(Yang-yih)으로 하여금 한글 자모 일체를 쓰도록 하는데 성공하였다. 귀츨라프는 한문으로 주기도문을 써주고, 서기관은 이것을 읽으면서 토를 달아 한글로 번역 하였다. 서기관은 주기도문을 번역한 뒤에 반복적으로 목을 베는 시늉을 하였다. 만약 고관들에게 발각되면 자기의 목이 달라난다는 암시였다. 그는 두려워하는 표정으로 그 종이를 없애버리기를 통사정 하였다. 그의 염려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그가 보는 앞에서 그 종이를 상자 속에 넣어 잠그고 누구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 시켰다.” *10)

      - One day, the 27th, after a great deal of persuasion, we succeeded in inducing Yang-yih to write out a copy of the Corean alphabet, and Mr. Gutzlaff having written the Lord's Prayer in Chinese character, he both gave the sound, and wrote it out in Corean character, but after having done so he expressed the greatest alarm, repeatedly passing his hand across his throat, and intimating, that if the chiefs knew it he would lose his head. He was most anxious to be permitted to destroy the paper, To quiet his apprehensions, it was locked up before him, and the was assured that no one should ever be allowed to see it.

      이와 같이 한글로 쓴 주기도문의 번역은 단편적 번역이 긴 하지만 최초의 한글 성경 번역이라 할 수 있다. 귀츨라프는 서기관(Yang-yih)로부터 또는 접촉하는 조선인으로부터 배운 한글을 1832년 11월의 중국 선교잡지(The China Repository)에 “한국어에 대한 소견(Remarks on the Corean Language)"라는 제목(소논문)으로 발표되었는데 이는 지볼트(P. F. Sibold)와 함께 한글을 서양에 알린 최초의 과학적이고 체계적 논문이라는 평가도 있다. *11)

      귀츨라프는 한글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크게 공헌하였다. 한글은 완전한 표음문자이며 글자의 짜임새가 매우 간단하면서도 착상이 교묘하다.*12)

      그리고 백낙준은 귀츨라프의 한국 방문은 극히 짧은 기간이었기 때문에 뚜렷한 성과는 볼 수 없었다고 하면서 그러나 그는 한반도를 방문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로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고 했다.

      「어쨌든 이는 하나님의 역사(役事)였다. 이 땅에 뿌려진 하나님의 진리의 씨가 소멸되리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가 미칠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우리는 이 날을 기다리고 있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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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용문헌

    *1) C. Gutzlaff, 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832 & 1833, with noticed of Corea.(귀츨라프일기), p.338.
    *2) C. Gutzlaff 일기, p.339, 1832. 7.27.
    *3) 오현기, 한국에서의 첫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 p.24, 2008.11. 1.
    *4) C. Gutzlaff 일기, pp.336-337.
    *5) Lindsay's Report, Report of proceedings on a Voyage to the Northern ports of China in the ship Lord Amherst, p.234.
    *6) C. Gutzlaff 일기, p.339.
    *7) C. Gutzlaff 일기, p.340.
    *8) 리진호, 귀츨라프와 고대도, 머리말, 1997. 7.17.
    *9) 김인수, 한국기독교회사, p.72, 1997. 8.10.
    *10) Lindsay's Report, p.239.
    *11) 오현기, 한국에서의 첫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 p.25, 2008.11. 1. *#지볼트(Philipp Franz Balthasar von Siebold, 1796~1866)는 일본에 체류(1823~29)했던 독일인 의사로서 조선견문록의 저자임.
    *12) 허호익, 청풍, p.158, 1998.10.30.
    *13) 백낙준, 한국개신교사, pp.43-44, 1993. 3. 5.